5월 말로 접어드니 오전부터 날씨가 제법 싱그럽더라고요. 주말 오전 11시쯤 되면 늘 "오늘은 아이와 뭘 하고 놀아줘야 하나" 하는 고민이 시작되곤 합니다. 매번 멀리 나가거나 거창한 시설을 이용하기에는 부모도 지치고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이번에는 집 앞 아파트 단지 내에 차가 다니지 않는 안전한 도로로 가볍게 나서봤습니다.
손에 들고 나간 것은 다름 아닌 '크레욜라 워셔블 사이드워크 초크(12색)'였습니다. 사실 이 분필은 아이가 두 돌 전후쯤 되었을 때 집에서 미술 놀이를 해주려고 큰맘 먹고 내돈내산으로 구매했던 제품이에요. 당시에는 화장실 벽이나 냉장고 패널을 도화지 삼아 놀게 해줬었는데, 아무리 물로 잘 지워진다고 해도 집안 가득 떨어지는 분필 가루를 감당하기가 참 힘들더라고요. 결국 몇 번 쓰지도 못하고 창고 깊숙이 방치되어 있었는데, 5세가 된 지금 조카와 함께 가볍게 즐길 만한 놀이를 찾다가 문득 이 분필이 떠올라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집안 깊숙이 묻혀있던 워셔블 분필의 재발견
창고에서 꺼내온 크레욜라 사이드워크 초크는 야외 활동용 분필답게 일반 분필보다 훨씬 굵고 단단한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총 12가지 색상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아이들이 알록달록하게 색감을 즐기기에 딱 좋은 스펙이더라고요. 예전에는 집안에서 가루 날림 때문에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던 녀석인데, 탁 트인 야외로 가지고 나오니 이보다 든든한 미술 도구가 없었습니다. 아파트 단지 내에 평소 차량 통행이 통제되는 조용한 도로 공간이 있어서 조카와 아이 손을 잡고 안심하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아스팔트 위의 거대한 도화지, "정말 여기 그려도 돼요?"
처음 아스팔트 바닥에 분필을 대기 전,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빠, 정말 여기 길바닥에 그림 그려도 돼요?" 하고 조심스럽게 묻더라고요. 항상 스케치북이나 정해진 칠판에만 그리다가 탁 트인 아스팔트를 마주하니 아이 입장에서는 꽤나 낯설고 신선했던 모양입니다. 물을 뿌리면 마법처럼 싹 지워진다는 것을 먼저 확인시켜 주자, 그제야 안심했는지 마음껏 바닥을 누비며 끄적이기 시작했습니다.
5세 아이는 거창한 형태보다는 알록달록한 선을 길게 쭉쭉 그리며 아스팔트 촉감을 느끼는 것 자체에 재미를 느끼는 듯했습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선을 그어두면, 옆에서 부모들이 거북이나 별, 얼굴 같은 큼직한 그림들을 그려주었어요. 그러면 아이들이 그 안을 원하는 색으로 채워 넣으며 협동 작전 같은 미술 놀이가 이어졌습니다. 넓은 바닥에 쪼그려 앉아 분필을 칠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어릴 적 동네 골목길 바닥에 돌멩이나 분필로 낙서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던 제 옛날 기억도 몽글몽글 떠올라 부모인 저도 묘하게 몰입하게 되더라고요.



경비아저씨는 괜찮다고 하셨지만, 마음 편한 정리를 위해
한참을 정신없이 그리고 놀다 보니 아스팔트 바닥이 알록달록한 그림들로 가득 찼습니다. 지나가시던 경비아저씨께서 아이들이 귀엽게 놀고 있으니 "어차피 비 오면 씻겨 내려가니까 안 지우고 그냥 놔둬도 된다"라며 다정하게 말씀해 주셨어요. 감사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아파트 주민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용 공간이다 보니 통행하시는 분들에게 미관상 피해를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정말 흔적도 없이 잘 지워질까?" 하는 부모로서의 약간의 불안감도 있었기에 확실하게 정리를 하고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여기서 최근에 구매했던 큐폴드 맥스 웨건이 아주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웨건에 큼직한 양동이를 싣고 물을 가득 담아 놀이 장소로 출동했지요.

그리는 것만큼 신났던 '물 뿌려 지우기' 놀이
정리의 하이라이트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졌습니다. 아이에게 직접 양동이의 물을 부어보게 했더니, 그림을 그릴 때만큼이나 물을 뿌려 그림을 지우는 과정을 하나의 거대한 물놀이처럼 너무 즐거워하더라고요.
물을 쏵 뿌리는 순간 아스팔트에 스며있던 색색의 분필들이 사르르 녹아내리며 말끔해지는데, 아이 눈에는 그 모습이 꽤나 신기했던 모양입니다. 조금씩 물을 부어가며 직접 발로 문지르기도 하고, 지워지는 과정을 보며 까르르 웃는 모습을 보니 정리 조차도 완벽한 놀이의 연장선이 되었습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물이 닿자마자 분필 흔적이 아주 싹 사라져서 부모 마음도 한결 안심이 되었습니다. 아스팔트 바닥에 어떤 얼룩이나 잔여 흔적도 남지 않고 말끔해진 것을 확인하니 속이 다 시원하더라고요. 돈을 들여 특별한 체험 시설에 가지 않아도, 집 앞에서 이렇게 온 가족이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에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총평 및 추천 대상
크레욜라 워셔블 사이드워크 초크를 이용한 아스팔트 미술 놀이는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운 주말 일상이었습니다.
- 장점: 스케치북이라는 좁은 제약에서 벗어나 거대한 공간에 크게크게 낙서할 수 있어서 아이들의 에너지를 발산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최고입니다. 물만 있으면 흔적 없이 지워지니 뒤처리도 깔끔합니다.
- 단점 및 주의할 점: 공용 공간을 이용하는 만큼 반드시 차량 통행이 전혀 없는 안전한 구역을 찾아야 하며, 주민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려면 놀이 후 물을 떠 와서 직접 청소해야 하는 부모의 수고로움이 필연적으로 동반됩니다.
추천 대상:
- 주말에 멀리 나가기는 부담스럽고, 집 앞에서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 싶은 가족
- 평소 스케치북이 작다며 온 집안 벽에 낙서 본능을 분출하는 에너제틱한 아이들
- 물 청소의 수고로움을 기꺼이 아이의 즐거움과 바꿀 준비가 되어 있는 부모님
오늘 이렇게 싹 지우는 맛을 알아버렸으니, 아마 다음 주말에도 아이 손에는 이 굵직한 분필 상자가 들려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음번에는 바닥에 조금 더 거대한 세계관을 그려보고 물총까지 동원해서 지우기 놀이를 업그레이드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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